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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스릴러

킬링 디어 - 신화 속 사슴의 저주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명작


영화 후반부를 보면서 '대체 이 영화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입니다. 아래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1. 기본정보
원제: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2017) 성스러운 사슴 죽이기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 더 랍스터,  가여운 것들 연출
출연: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배리 키오건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심리 공포
러닝타임: 121분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줄거리: ▌5 (결말 포함)


▌2. 미국 평론 및 평점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80% (평론가 호평)
메타크리틱 점수: 73점
현지 평론가 한줄평: "숨이 막힐 정도로 차갑고 정교하게 짜인 심리 스릴러다.", "배배 꼬인 서스펜스를 아주 영리하게 연출했다."
미국 평단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영화가 주는 압도적인 긴장감과 배우들의 소름 돋는 연기력에는 대부분 찬사를 보냈습니다.


▌3.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1) 기묘한 세계의 창조자
란티모스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가 왜 이렇게 기묘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게 지극히 정상입니다. 전 세계 평단에서도 이 감독의 작품들을 '그리스 기괴파(Greek Weird Wave)'라고 부를 정도니까요. 이 감독의 가장 큰 특징은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규칙을 가진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 사람들을 툭 던져놓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송곳니>: 자식들을 집에만 가두고, 송곳니가 빠져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속이는 부모 이야기.
<더 랍스터>: 일정 기간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진짜 '동물'로 변해버리는 기괴한 호텔 이야기.
영화 속 인물들은 이 황당한 규칙을 너무나 태연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그 어색하고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꼬집는 게 이 감독의 전매특허입니다.

(2) 감정을 싹 뺀 독특한 연출 스타일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로봇처럼 딱딱하고 건조하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킬링디어>에서도 인물들이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죠. 일부러 관객이 영화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걸 방해하는 연출입니다. 오히려 한 걸음 떨어져서 인간의 이기심과 위선을 냉정하게 관찰하게 만듭니다. 화려한 영상미를 보여주면서도, 내용은 소름 돋게 차가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식을 포함하여 생존 게임을 하는 부모를 보고 정말 냉소적인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죠.

(3) 한국 영화와의 특별한 인연 - <부고니아>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 <부고니아>는 놀랍게도 한국의 레전드 컬트 영화인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평소 독특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감독답게, 외계인 음모론을 다룬 한국 영화에 매료되어 직접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그의 페르소나인 배우 엠마 스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또 한 번 전 세계의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4. 영화의 뼈대가 되는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신화 
(1) 아가멤논 왕이 저지른 실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가멤논' 왕은 트로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아울리스'라는 항구에 모였습니다. 전쟁터로 떠나기 전, 아가멤논은 사냥을 하다가 숲에서 아름다운 사슴 한 마리를 보고 활로 쏴 죽입니다. 그러고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도 나만큼 사냥을 잘하진 못할 걸!"이라며 큰소리를 치고 오만을 부렸죠. 하필 그 사슴은 여신이 아끼는 신성한 사슴이었습니다. 영화 제목인 '킬링디어(Sacred Deer)'가 바로 이 '신성한 사슴'을 뜻합니다.

(2) 여신의 분노와 잔인한 대가
단단히 화가 난 아르테미스 여신은 바람을 뚝 끊어버렸습니다. 돛단배를 타야 하는 그리스 군대는 바다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죠. 군대 안에서 원망이 쏟아지자 예언자가 해결책을 가져옵니다. "여신의 화를 풀려면, 아가멤논 당신의 가장 소중한 친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왕은 절망했지만, 결국 전쟁과 명예를 위해 딸을 아울리스 항구로 불러내어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딸을 죽이려는 순간, 여신이 딸을 가엽게 여겨 빼돌리고 그 자리에 대신 사슴 한 마리를 남겨두며 저주를 끝냅니다. 


⚠️⚠️⚠️ (3) (4) (5) - 스포일러 포함 ⚠️⚠️⚠️
⚠️(3) <킬링디어>와 소름 돋는 평행이론 
이 신화를 알고 영화를 보면 모든 인물의 역할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 의사 스티븐 = 아가멤논 왕: 신처럼 오만하게 굴다가 사람을 죽이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 소년 마틴 = 아르테미스 여신: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저주(마비)를 내리고 대가를 요구합니다.
* 스티븐의 막내아들 = 이피게네이아 (친딸): 아버지가 저지른 죄 때문에 아무 잘못 없이 희생당하는 제물입니다.
의사 스티븐은 신처럼 군림하다가 실수를 저질렀고, 마틴은 그 죄를 벌하러 온 신의 대리인 역할을 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그리스식 복수극을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풀어냈습니다. 스티븐의 가족들이 거실에서 눈을 가리고 제비뽑기처럼 총을 맞는 잔인한 장면은, 결국 아가멤논 왕이 제단 위에 딸을 올려두어야 했던 고대 신화의 잔인한 설정을 그대로 현대적으로 가져온 것이죠.⚠️

⚠️(4) 신화의 자비 vs 영화의 잔혹함
고대 신화에서는 마지막 순간에 여신이 마음을 바꿉니다. 딸을 빼돌려 살려주고 대신 사슴을 제단에 남겨두죠. 최소한의 신화적 '자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란티모스 감독은 영화 속에서 그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습니다. 총구를 피해 아들이 살아남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죠. 탕 소리와 함께 아들은 진짜로 목숨을 잃고, 거실 바닥은 피로 물듭니다. 신화보다 현실이 훨씬 더 냉혹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 셈입니다.⚠️

⚠️(5) 감독이 결말을 바꾼 진짜 이유
감독은 왜 굳이 아들을 죽였을까요? 의사 스티븐에게 '진짜 대가'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스티븐은 의사로서 신처럼 군림하며 남의 목숨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자신이 의료사고를 내고도 "그 환자는 어차피 죽을 확률이 높았다"라며 핑계를 대고 도망쳤죠. 감독은 이런 오만한 인간에게 "남의 가족을 피눈물 나게 만들었으면, 네 가족의 피를 흘려야만 죄가 씻긴다"라는 냉정하고 엄격한 인과응보를 끝까지 밀어붙인 것입니다. 신화보다 더 냉혹한 영화의 결말 덕분에,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마음에는 더 깊고 서늘한 여운이 남게 됩니다.⚠️

의사 스티븐: 콜린 파렐



▌5. 킬링디어 줄거리와 결말
성공한 심장외과 의사 스티븐은 언제부턴가 고등학생 소년 마틴을 정기적으로 만나며 값비싼 선물을 사줍니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친구의 아들이라고 둘러대지만, 사실 마틴은 과거 스티븐의 음주 수술(의료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이었습니다. 스티븐은 죄책감과 비밀을 덮으려는 마음에 마틴의 환심을 사려 했던 것이죠.

하지만 마틴이 스티븐의 가족에게까지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며 선을 넘기 시작하자, 스티븐은 서둘러 마틴을 멀리하며 관계를 끊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마틴은 스티븐을 찾아와 소름 끼치는 경고를 던집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으니, 균형을 맞추기 위해 스티븐의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서 대가를 치르라는 협박이었습니다. 만약 직접 고르고 죽이지 않으면 가족 모두가 '4단계의 저주'를 받아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라 예언합니다.

스티븐은 미친 소리라며 마틴을 쫓아냅니다. 하지만 그 직후, 건강하던 막내아들 밥의 다리가 갑자기 마비되어 쓰러집니다. 뒤이어 딸 킴마저 똑같이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게 되죠. 세계적인 의사들이 모인 병원에서 온갖 정밀 검사를 해보아도 원인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마틴이 예언한 저주의 1단계(마비)가 완벽하게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스티븐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포 앞에서, 가족 중 누구를 희생시켜야 할지 잔인한 선택의 기로에 강제로 서게 됩니다.

니콜 키드먼



⚠️⚠️⚠️ 여기서부터 핵심 결말과 반전이 전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마틴의 경고대로 아들과 딸은 다리가 마비되더니, 급기야 2단계인 '음식 거부'가 시작되고 눈에서 피를 흘리는 3단계 '출혈' 증상까지 보입니다. 마틴이 말한 마지막 4단계는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절망한 스티븐은 마틴을 납치해 지하실에 가두고 폭행하며 저주를 풀라고 협박합니다. 하지만 마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스티븐의 허벅지를 물어뜯으며 끝까지 버팁니다. 결국 이 저주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마틴을 때린다고 풀릴 일이 아니었던 거죠.

상황이 이쯤 되자, 집안 분위기는 기괴하게 흘러갑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티븐에게 눈물로 호소하거나, 발을 핥으며 아부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가족을 죽여달라는 소리 없는 생존 게임이 시작된 셈입니다. 결국 스티븐은 누구도 선택하지 못하고, 잔인한 무작위 게임을 시작합니다. 아내와 딸, 아들을 거실 의자에 묶어두고 눈을 가립니다. 그리고 자신도 얼굴을 꽁꽁 싸매 앞이 안 보이게 만든 뒤, 소총을 들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무작위로 총을 쏩니다. 누구든 총에 맞는 사람이 희생자가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몇 번의 오발 사격 끝에, 결국 탕 소리와 함께 막내아들 밥이 총에 맞아 숨을 거둡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딸과 아내의 마비 증세가 싹 사라집니다. 마틴이 말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의 대가가 완성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살아남은 스티븐과 아내, 딸은 동네 식당에 앉아 있습니다. 이때 식당 문을 열고 마틴이 들어옵니다. 세 사람은 마틴을 바라보고, 마틴 역시 그들을 가만히 응시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저 서늘한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기묘한 시선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 식당 장면에서 벌을 받은 인간과 이를 지켜보는 신의 대리인(마틴)의 기묘한 침묵을 볼 수 있습니다.⚠️

배리 키오건



▌6.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
배배 꼬인 독특한 걸음걸이: 극 중 하반신이 마비된 아이들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기괴한 장면이 나옵니다. 감독은 이 느낌을 살리려고 배우들에게 일부러 몸을 뒤틀며 걷는 연습을 시켰다고 합니다.
실제 병원에서의 촬영: 영화 속 병원 장면들은 세트장이 아닙니다. 미국 신시내티에 있는 실제 병원에서 촬영해서 영화 특유의 차갑고 서늘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