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스릴러

미안해요, 리키 - 택배 & 간병

now-is-here 2026. 6. 20. 11:39

 

미안해요, 리키

 

원제: Sorry We Missed You (2019)
감독: 켄 로치
관람등급: 12세 이상 (101분)

평점: 씨네21(국내 전문가): 7.20 /10

         네이버 관객 평점: 9.21

         로튼 토마토(신선도 지수): 88% (평점: 7.8/10)

         메타크리틱: 82 / 100

줄거리: ▌4.(결말 포함)

 

우리나라 택배기사의 과로사 뉴스가 나온다. 영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우리 삶을 드러내는 영화는 보기 전부터 마음이 가라앉는다. '영화는 가짜다'라는 가림막으로 마음에 안전 막을 치고 편안하게 볼 수가 없다. 우리 삶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면 마음속에서 안전 막이 녹아버려, 무방비 상태로 주인공들에게 몰입하고, 그들의 불행을 나도 같이 겪는다. 제목부터 미안하다고 하니 제목만 봐도 서글프다.

 

별 5개 중에서 1개를 준 관람평이 있었다. 1점을 준 이유는 "이 영화는 모든 게 부족하다! 폭력도 없고 말도 과격하지 않다." ㅎㅎㅎ

 


1. 감독

감독은 켄 로치(Ken Loach, 1936년생), 2026년 현재 89세 (Loach 뜻은 '미꾸라지'다. 미꾸라지...)
'그런데 말입니다' 김상중 씨의 유머가 갑자기 생각난다. "추어탕을 먹었는데, 그 가게 미꾸라지 중에 다른 것보다 더 큰 미꾸라지가 있었다. 그게 뭔지 아나?" ................................................. '미꾸엑스라지'다. 아저씨 개그다. 의식의 흐름을 따르다 보니, 잠시 다른 길로 빠졌다;; 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켄 로치 감독의 2016년 작품,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또한 추천한다.

켄 로치 감독

 

각본을 쓴 폴 래버티(1957년생)는 사전 조사를 위해 택배기사들을 만나고 함께 배달도 하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감독은 근로 빈곤층이 부딪힌 상황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근로 빈곤층은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먹고살 만큼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현실은 직업이 있다고 해도 사람답게 살 수 없다. 직업이 심지어 2개라 해도 자신이나 가족을 부양하는 데 충분치 않다.  새로운 기술 발전이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임금을 낮추는 데 이용된다."라고 감독은 말한다.



▌2. 원제의 의미

원제 'Sorry We Missed You'는 고객의 서명이 필요한데 고객이 부재중인 경우 택배기사가 남기는 메모라고 한다. '고객님, 방문했는데 안 계시네요.' 정도의 의미일까? '우리 사회가 리키 당신을 놓쳐서 미안하다'는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해서 제목을 '미안해요, 리키'라고 번역했을지도 모른다.

영국 택배 기사의 실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택배를 하루 쉬려면 대신 배달해줄 기사를 찾아야 한다. 본인이 배달을 못 하니까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데 그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타 기사를 못 찾으면 벌금을 물게 된다. 택배기사 '돈 레인'은 2018년(53세) 당뇨병으로 병원에 가느라 휴가를 낸 대가로 벌금을 내야 했다. 심하게  아파서 다시 병원에 가야 하는데 벌금을 물 여력이 없어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운전 중에 당뇨병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택배가 몰리는 크리스마스 시기였다. 'DPD'라는 영국 택배회사에서 19년간 일했다고 한다.

 

 

영국 잉글랜드 뉴캐슬

▌3.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영화의 무대는 영국 잉글랜드 동북부 뉴캐슬(Newcastle)이다.

리키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내 집 마련의 꿈도 깨지고, 직업을 잃어, 먹고살기 위해  안 해본 일 없이 살아오다가 택배업을 시작한다. 택배회사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사업자 가맹주가 되는 시스템이란다. '개인사업자'라서 고용계약서도 없다. 사고나 임금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위험을 개인에게 떠넘긴 회사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감독은 이런 상황을 '착취'라고 말한다. 리키는 명색만 개인사업자 가맹주일 뿐, 하루 14시간씩 6일 동안 강도 높은 일을 하는 노동자이고, 관리자는 사사건건 감시, 감독하고 하루라도 일을 멈추면 벌금을 물린다.


리키의 아내, 애비는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는 간병인이다. 건당으로 돈을 받는다. 초과 수당도 없고 교통비 지원도 없는 '제로 아워 계약' 노동자다. "간병하는 20분에 대한 수당을 받지만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40분에 대한 수당은 없다. 최저임금의 3분의 1만 받는 것이다."라고 감독은 말한다. 간병은 무척 힘든 일인데 애비처럼 고운 마음으로 노인을 대해준다면 더없이 감사한 일이고, 그런 간병인을 만난 사람들은 행운일 것이다.

 

장시간 노동을 한 엄마, 아빠는 집에 와서 잠에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아직 부모의 관심과 감독이 필요한 나이인 자녀들을 돌볼 수가 없다. 이미 현실을 파악해버린 청소년기의 아들은 대학에 진학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대학에 가도 학자금 빚만 쌓일 뿐, 졸업해도 긱 이코노미의 일부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리키는 사고 치는 아들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기계같이 냉정한 택배회사 관리인, 교통 체증, 주차 문제 등 괴로운 일 천지다. 각양각색의 택배 수신인들도 볼만하다. 리키 가족도 힘들지만, 리키 부인이 돌보는 노인들과 장애인 젊은이의 삶도 만만치 않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삶은 또 얼마나 힘든가. 씁쓸하지만 노인은 우리의 미래 모습이다.

 

 

 

▌4. 줄거리 (결말 포함)⚠️⚠️⚠️스포일러 주의!!!⚠️⚠️⚠️

(1) "내가 사장이 된다고?" 덫에 걸린 가장
주인공 리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안정적인 직장을 잃고 일용직을 전전하던 성실한 가장이다. 아내 애비는 아픈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출장 간병인이고, 부부에게는 사춘기 아들 셉과 영리한 딸 리사가 있다. 어느 날 리키는 대형 택배회사의 위탁 택배기사(지입 기사) 면접을 보게 된다. 관리자는 리키에게 달콤한 말을 건넨다. "여기선 고용되는 게 아냐. 자네가 스스로 사장이 되어 일한 만큼 버는 거지." 

개인 사업자로서 자유롭게 일하며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리키는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택배 차량을 마련할 돈이 없었던 리키는 아내 애비가 출장 간병 일을 할 때 쓰던 소중한 중고차를 팔아 택배 밴(Van)을 구입한다. 이 선택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2) 숨 막히는 현실: 사장이 아니라 '노예'였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리키가 마주한 것은 '자유'가 아닌 '철저한 감시와 통제'였다.

*휴식 없는 노동 - 단 1분의 지체도 허용하지 않는 단말기(스캐너)의 알람 소리에 쫓겨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페트병에 소변을 보며 운전해야 할 정도다.
*가족의 붕괴 - 리키가 하루 14시간 넘게 배송에 매달리고, 아내 애비 역시 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느라 노동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은 방치된다. 사춘기 아들 셉은 방황하며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고, 급기야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경찰서에 합의금까지 물어주게 된다.
*악순환의 연속 - 아들의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리키가 하루 일을 쉬자, 회사는 무자비하게 '대체 기사 비용'과 '벌금'을 부과한다.

가족을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일을 할수록 가족이 망가지는 지옥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3) 결말: 미안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비극 (스포일러!!!)
결국 가장 끔찍한 사건이 터진다. 리키가 배송을 하던 중, 골목길에서 불량 청소년들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한 것이다. 리키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택배 물건들을 도난당했으며, 그토록 소중했던 단말기까지 부서진다. 병원 응급실에 앉아있는 리키에게 택배회사 관리자는 전화를 걸어 위로는커녕 냉정하게 말한다. "도난당한 물품 대금과 부서진 단말기 가격, 그리고 오늘 배송 못한 벌금까지 합쳐서 수천 파운드를 물어내셔야 합니다." 가족들은 이제 제발 일을 그만두라고 오열하지만 이미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은 리키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다음 날 아침,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을 정도로 얼굴이 부어오르고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리키는 가족들이 자는 사이에 다시 택배 차량의 운전대를 잡는다. 울면서 만류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 한 채, 리키는 "돈을 벌어야 해, 당장 오늘 일을 안 하면 파산이야"라고 울부짖으며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차를 몰고 일터로 향한다. 리키의 울먹이는 운전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5. 제로 아워 계약/ 긱 노동자(gig worker)

제로 아워 계약(0시간 계약, Zero-Hour Contract)란 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 계약이다. 최저 근무시간이 0시간이라는  뜻이다. 최소한의 근무시간과 최소임금을 보장하는 시간제(part-time)보다 못한 근로 조건이라서 노예 계약으로 통한다. '24시간 대기조'로 불리기도 한다. 다른 부업을 못하도록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주가 요청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0시간 계약'은 영국에서 가장 성행한다.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 가장 성행하다니 놀라웠다. 사실 이미 전 세계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거나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다.

리키와 애비는 '긱 노동자(gig worker)'다. 여기서 잠깐,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뭘까? 지식백과에 따르면, 빠른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하는 경제 현상이다. 1920년대 미국에서 재즈 공연의 인기가 높아지자 즉흥적으로 단기적인 공연팀(긱, gig)들이 생겨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처음에는 긱(gig)이 프리랜서, 1인 자영업자를 뜻했으나 2015년 매켄지 컨설팅사는 '디지털 장터에서 거래되는 기간제 근로'라고 정의했다

'호출 대기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라고도 한다. 긱 경제 상황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긱 노동자다. 앱, SNS 등 디지털 플랫폼에서 노동력이 거래되는 근로 형태로 배달대행, 우버택시, 대리운전 등이 있다.

 


▌6. 등장인물
리키 역의 크리스 히친(Kris Hitchen)은 맨체스터 출신으로 실제로 배관공이었다.극중에서도 맨체스터 출신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팬이라고 나온다. 리키의 아내 애비 역의 데비 허니우드(Debbie Honeywood)는 실제로 남편이 정리해고를 당한 적이 있고, 자신은 10년간 보조교사로 일했다고 한다. 아들 세비 역의 리스 스톤(Rhys Stone)은 난독증이 있다고 한다. 난독증이란 듣고 말하는 데는 이상 없지만 문자를 판독하는 데 이상이 있는 증세다. 리스 스톤은 실제로도 그라피티 예술가라고 한다. 이 영화는 딸 라이자 역의 케이티 프록터(Katie Proctor), 리스 스톤, 데비 허니우드에게 첫 작품이다. 영화 속 택배기사들은 현재 택배 기사이거나, 전에 택배기사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7.  글을 마치며
 《미안해요, 리키》는 자극적인 악당이 나오지 않는다. 택배회사 관리자도 시스템의 규칙대로 움직일 뿐. 그래서 영화가 주는 먹먹함이 더 오래간다. ​앞으로 우리의 경제,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빈부격차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고민해야 할 상황에 빠졌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영화다. 결말이 그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다. 결말 이후 불행한 일이 더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고가 나면 어쩌나, 더 큰 불행이 닥치면 어쩌나, 보는 내내 불안했다. 리키네 가족에게 더 큰 불행이 이어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적어도 아들은 아버지의 고군분투를 이해하고 이제는 사고 치지 않을 것 같다.

​<발췌 및 참고>
Financial Times/ Byline Times/ The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