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 뒤틀린 믿음이 낳은 비극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The Devil All the Time
개봉: 미국 2020년 9월 16일 개봉 (138분)
관람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장르: 심리 스릴러, 남부 고딕, 범죄 드라마
줄거리: ▌4. (결말 포함)

영혼이 맑은 분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상처 입으실 수 있다. 안 본 눈을 사고 싶으실지도. 어떤 편견이나 정보 없이 그냥 영화를 보시면 좋겠다. 제목 때문에 영화에 대한 편견을 갖고 보면 실망하거나 지루할지 모른다. 악마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니 오해할 수 있다. 심령적인 강력한 악마를 기대하면 안 된다. 공포 영화에 내성이 강한 분에겐 지루할 수 있다. 너무 지루해서 10분, 20분씩 나눠서 봤다는 분도 있었다. 사람의 기호가 이렇게 다양하다니, 놀랍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봤던 내겐 몰입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영화였다.
▌1. 등장인물
아빈 역은 [스파이더맨(홈커밍, 파 프롬 홈)]의 톰 홀랜드가 맡았다.

영화 [그것]의 이 무서운 피에로가 아빈의 아빠, 윌러드 역의 빌 스카스가드다. 사진만 봐도 무섭다. 기도하며 십자가를 올려다볼 때 섬뜩했다.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가 프레스턴 목사 역의 로버트 패틴슨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테넷]에서도 기억에 많이 남는 배우다. 연기가 무척 자연스러웠다.

[해리 포터]의 더들리가 로이 역의 해리 멜링이다. 많이 변해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등장한 거미는 CG(컴퓨터 그래픽)가 아니라 진짜 거미라고 한다.

다른 배우들도 다들 쟁쟁한 인물이라고 한다. 배우의 전작에 관한 나의 관심은 여기까지다.
▌2. 원작자: 도널드 레이 폴록
영화의 내레이션은 원작자가 맡았다. 쓸데없는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망쳤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원작자의 목소리로 들어서 더 실감 났다.

원작자 도널드 레이 폴록(Donald Ray Pollock)의 삶을 보면 미국은 꿈을 이룰 기회가 있는 나라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하긴 우리나라도 막노동꾼 출신으로 서울대를 수석으로 합격하고 변호사가 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의 저자가 있다. 다만, 어떤 분야든 타고난 능력이 있어야 인생이 바뀌는 기적이 가능하겠지만.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작가 소개 글을 보면, 폴록은 1954년 오하이오의 낙후된 도시, 녹켐스티프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제지 공장에 다니며 술과 약에 기대어 살았다. 네 번째 재활 치료 끝에 문학에서 삶의 전환점을 찾는다. 오하이오주립대학에 진학해서 영문학 학위를 받았다. (어린 나이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어도, 술과 약에 기대 살았더라도, 원할 때 대학에 갈 수 있다니, 그 환경은 부럽다.)
대학 문예지에 기고한 글을 보고 교수이자 작가인 미셸 허먼이 '일을 관두고 글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같은 대학에서 예술학 석사 과정을 밟던 중 고향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은 단편집 [녹켐스티프]를 발표했고, 펜/로버트 W. 빙엄상을 수상했다. 3년 만에 첫 장편소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가 호평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상도 많이 받았고 '올해 최고의 책 톱10'에 선정되기도 했다.
▌3. 원작을 읽은 이유
'The Devil All The Time'이라는 제목이 어떤 문맥에서 나왔는지 쓸데없이 궁금해서 원작(번역본)을 읽었다. 영화에서 내레이터는 이렇게 말한다. "아들(아빈)에겐 아버지(윌러드)가 늘 악마와 싸우는 것 같았다." (It seemed to his son that his father fought the devil all time.) 원작에는 이 대사가 없다.

아빈과 아버지가 대화를 나눈다.
아버지: 세상엔 막돼먹은 놈들이 많아.
아들: 백 명도 넘어요?
아버지: (웃음을 터트리며) 그래. 적어도 그 정도는 될걸.
이 대화는 원작에도 있고 영화에도 나온다.
'The Devil All The Time'을 의역해서 '세상엔 막돼먹은 놈들이 많아.'라고 했나 싶었는데 '막돼먹은 놈들'을 'sons and bitches'라고 말하니 이 부분에서 제목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로이가 이렇게 말한다. "선하게 사는 건 쉽지 않죠. 악마가 늘 곁에 있으니까." 원문은 "It's hard to live a good life... It seems like the Devil don't ever let up."이다. 직역하면 "좋은 삶을 산다는 건 어렵다… 악마는 좀처럼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 것 같다.(끊임없이 몰아붙인다)" 정도의 의미다. 열심히 찾아봤으나, 소설 본문 안에 "The Devil All the Time"이라는 문구가 그대로 등장하지는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즉, 제목은 특정 대사나 문장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압축한 표현에 가깝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서는 광신적인 신앙, 살인과 폭력, 위선적인 목사들, 인간의 욕망과 죄,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극, 이런 것들이 세대를 넘어 반복된다. 실제 악마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의 악과 타락이 "항상 (all the time)" 존재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제목의 정신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이다. 비록 "The Devil All the Time"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지만, "악마는 결코 쉬지 않는다 (don't ever let up)"라는 말이 제목이 말하려는 세계관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원작을 읽은 또 다른 이유는 영화에 담지 못한 소소한 내용이 알고 싶었다. 영화에 빠진 부분, 각색된 부분이 궁금했다. 원작을 보니 영화는 순화된 버전이다. 원작은 온갖 종류의 악인과 악행을 수집하여 책으로 만든 모음집 같았다. 읽다 보면 메스껍다. 윌러드가 고향으로 가는 길에 탔던 버스 기사의 이야기, 윌러드 집주인인 변호사의 불행한 이야기, 사이크스 목사의 인생 이야기, 윌러드가 행한 가장 용서받지 못할 죄도 영화에서 빠졌다. 영화에서 로이와 시어도어의 전도 여행은 바로 끝나지만 원작에서는 오래 계속된다. 역할이 소소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도 언급되어 재미있다. 모든 궁금증이 책을 읽고 해소됐다. 시원하다. 영화를 본 후 읽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의 악한 마음과 행동을 계속 읽다보니 속이 좀 불편했을 뿐이다.

추신: 마지막에 등장하는 자동차의 운전자를 예수님으로 느꼈다는 댓글도 봤다. 누군가는 미국의 사이비 교주 찰스 맨슨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해석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다. 영화의 마지막 배경은 1960년대 후반(1965년~1969년 사이)이다. 라디오에서 베트남 전쟁(1955년~1975년) 징집 뉴스가 나오고, 히피 문화가 극에 달했던 이 시기는 실제로 악명 높은 사이비 교주이자 대량 살인 청부업자 찰스 맨슨이 활동하던 시기와 완벽히 일치한다.
▌4. 줄거리 (결말 포함) ⚠️⚠️⚠️스포일러 주의!!!⚠️⚠️⚠️
악행의 연속인 이 작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신앙'이 빠지지 않는다. 악행과 신앙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신앙이란 원래 '사랑과 선'의 이미지인데 영화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왜곡된 신앙, 자기만의 방식대로 해석한 잘못된 신앙, 죄를 저지르더라도 마지막에만 회개하면 된다는 영화 [밀양] 식의 편리한 신앙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제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과 베트남전쟁(1955년~1975년)이 배경에 있는 영화다. 신앙과 전쟁과 인간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1) 피의 제단 - 아버지의 유산
참전용사 윌러드는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아내 샬럿이 암에 걸리자 그는 기도만이 아내를 살릴 수 있다고 믿으며 점점 광기에 빠져든다. 결국 개를 제물로 바치는 기행까지 저지르지만, 아내는 끝내 세상을 떠난다. 절망에 빠진 윌러드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어린 아들 아빈은 고아가 되어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된다.
(2) 마을을 잠식한 악마들
아빈과 남매처럼 자란 순진한 소녀 안도라는 새로 부임한 프레스턴 목사에게 속아 임신하게 된다. 하지만 프레스턴은 책임을 지지 않은 채 그녀를 버리고 도망친다. 절망한 안도라는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아빈은 분노에 휩싸이고, 프레스턴을 찾아가 총으로 처단한다.
(3) 연쇄 살인마 부부와의 조우
한편 칼과 샌디는 히치하이커를 유인해 살해하는 연쇄살인범 부부였다. 길을 떠나던 아빈은 우연히 이들의 차를 타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위험에 빠졌음을 알아챈 아빈은 먼저 총을 꺼내 들고, 결국 칼과 샌디를 사살하며 살아남는다. 샌디의 오빠이자 타락한 보안관인 리 보덱커는 동생의 범죄와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아빈을 쫓기 시작한다.
(4) 결말 - 피로 씻은 구원
아빈은 아버지가 자살했던 고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자신을 추적해 온 보안관 리 보덱커와 마지막 대결을 벌이게 되고, 결국 리를 사살한다. 이후 사건과 관련된 증거들을 모두 불태운 아빈은 길 위를 떠돌다 히치하이킹한 차 안에서 겨우 잠이 든다. 라디오에서는 베트남전 징집 소식이 흘러나오고, 영화는 또 다른 전쟁과 비극이 반복될 것임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제목처럼 악마는 사라지지 않으며, 인간의 폭력과 악순환 역시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씁쓸한 메시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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