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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스릴러

로마 - 거꾸로 읽으면 사랑이 되는 흑백 영화

 


▌1. 기본정보
원제: ROMA
감독: 알폰소 쿠아론 (Alfonso Cuarón)
장르: 드라마, 시대극
개봉날짜: 2018년 12월 14일 (넷플릭스 전 세계 공개 및 국내 제한 개봉)
개봉국가: 멕시코, 미국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주연: 얄리차 아파리시오 (Yalitza Aparicio, 클레오 역), 마리나 데 타비라 (Marina de Tavira, 소피아 역)
줄거리: ▌4. (결말 포함)

▌2. 평점 및 평론
(1) 평점
IMDb 평점: 7.7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 신선도 지수 96%, 관객 점수 72%(비평가들의 압도적인 찬사 기록)
메타크리틱 (Metacritic): 메타스코어 96점(대다수의 메이저 평론가들이 100점 만점을 부여하며 '필스터피스' 등극)
*필스터피스(Filmsterpiece): '영화(Film)'와 걸작을 뜻하는 '마스터피스(Masterpiece)'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말장난)
네이버: 9.19

(2) 평론
시카고 선타임스 (Chicago Sun-Times): 쿠아론의 예술성은 다큐드라마의 정밀한 사실성과 꿈을 필터링한 듯한 황홀하고 서정적인 시를 동시에 만들어 낸다.
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 Post): 속임수나 비유 없이, 삶을 있는 그대로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만으로 개인적인 기억을 가장 정치적이고 위대하게 승화시켰다.

《로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최초로 제75회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휩쓸며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전 세계 평단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압도적인 연출력과 시각적 미학에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보냈다.


▌3. 비하인드
(1) 감독의 실제 유년 시절 보모에게 바치는 헌사:
이 영화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1970년대 초반 멕시코시티의 '콜로니아 로마' 지역에서 보냈던 실제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제작한 반자전적 영화다. 주인공 '클레오'의 실제 모델은 감독의 집에서 보모로 일하며 자신을 친자식처럼 키워준 원주민 여성 '리보(Libo)'다. 감독은 그녀의 노고와 헌신에 감사와 미안함을 전하기 위해 이 영화를 제작했다.

(클레오)


(2) 오디션장에 언니 대신 따라갔다가 캐스팅된 주인공:
'클레오'를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얄리차 아파리시오는 연기 경험이 아예 없는 초등학교 교사 지망생이었다. 그녀는 오디션을 보고 싶어 하던 언니를 응원하기 위해 우연히 캐스팅 콜 현장에 따라갔다가, 언니의 강력한 권유로 대신 카메라 앞에 서게 되면서 3,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연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오디션 당일, 임신 중기인 언니는 입덧을 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Casting Call'은 감독이나 제작사가 '이 작품에 출연할 배우/모델을 구합니다! 오디션 보러 오세요'라고 공식적으로 공고를 내거나 초대하는 것이다.

(3) 대본 없이 진행된 즉흥 촬영 기법:
쿠아론 감독은 배우들에게 전체 시나리오 대본을 전혀 주지 않고 당일 아침에만 각자의 대사를 구두로 전달했다. 다른 배우가 어떤 대사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촬영을 진행하여 극적인 긴장감과 실제 생활 같은 날것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4) 실제 가구들을 그대로 배치한 세트장:
쿠아론 감독은 완벽한 리얼리즘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이 실제 살았던 집을 완벽하게 재현한 세트장을 짓고, 멕시코 전역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의 실제 가구와 소품들을 수소문해 그대로 배치하여 촬영했다.

 


▌4. 줄거리 (결말 포함) ⚠️⚠️⚠️스포일러 주의!!!⚠️⚠️⚠️
(1) 줄거리
1970년대 초 멕시코시티의 중산층 주거지 로마 지역. 원주민 출신의 젊은 보모 클레오는 의사인 안토니오와 아내 소피아, 네 명의 아이들이 사는 대가족의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클레오는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네 명의 아이들을 진심 어린 애정으로 돌보며 가족의 일원으로 묵묵히 녹아든다. 그러나 이 가정에 거대한 균열이 찾아온다. 가장인 안토니오가 학회 참석을 빌미로 집을 떠난 후 다른 여성과 바람이 나 돌아오지 않는다. 남겨진 아내 소피아는 남편의 부재와 경제적 압박으로 큰 슬픔과 불안에 휩싸인다. 

비슷한 시기, 클레오 역시 무술을 배우는 청년 페르민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덜컥 임신을 한다. 임신 사실을 전해 들은 페르민은 영화관에서 화장실에 간다며 도망친 뒤 그대로 연락을 끊고 잠적한다. 클레오는 자신이 남의 집 일을 돕는 가정부 신분인데,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미혼모가 되면 당장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에 휩싸인다. 하지만 집주인 소피아는 분노하는 대신 오히려 클레오를 따뜻하게 위로하며 산부인과 병원에 데려가 출산을 돕는다.

세상이 격렬한 시위와 정치적 폭력(코르푸스 크리스티 학살 사건)으로 얼룩지던 어느 날, 아기용품을 사러 가구점에 들른 클레오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총을 들고 난입한 극우 단체 청년들 사이에서 자신을 버린 전 남자친구 페르민을 마주한다. 페르민은 클레오에게 총구를 겨누며 위협하고, 그 충격과 공포로 인해 클레오는 양수가 터져 급히 병원으로 이송된다.

(2) 결말
수술실로 긴급히 옮겨진 클레오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지만, 안타깝게도 아기는 이미 숨을 거둔 사산아로 태어난다. 아이의 시신을 품에 안고 소리 없이 오열하는 클레오의 슬픔은 극에 달한다. 슬픔에 빠진 클레오를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남편과의 완전한 이혼을 정리하기 위해 소피아는 네 명의 아이들과 클레오를 데리고 툭스판 해변으로 여행을 떠난다. 해변에서 소피아와 큰아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두 어린아이들이 거센 파도에 휩쓸려 바다 깊숙이 떠내려가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한다.

평소 물을 극도로 무서워하던 클레오는 눈앞의 거친 파도를 보며 순간 겁에 질린다. 하지만 멀어져 가는 아이들의 비명소리에 두려움을 누르고, 오직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거친 집어삼킬 듯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진다.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끝내 두 아이를 품에 안아 해변으로 무사히 구출해 낸다. 달려온 소피아와 아이들은 모래사장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오열한다. 이 순간, 클레오는 마음 깊이 숨겨두었던 진짜 죄책감을 터트리며 울부짖는다. 사실은 자신이 임신했을 때부터 아기가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자신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 아기가 죽은 것만 같아 무서웠다고 참회한다. 가족들은 그런 클레오를 더욱 단단히 안아주며 고마움과 사랑을 전한다.

폭풍 같았던 여정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들. 집은 아빠의 짐이 모두 빠져나가 한결 가벼워진 상태다. 상처를 극복하고 단단해진 이들은 새로운 삶을 받아들인다. 클레오는 평소처럼 옥상으로 올라가 가득 쌓인 빨랫감을 널며, 드넓은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가만히 응시한다. 그렇게 평범하지만 숭고한 그녀의 일상이 다시 흘러가며 영화는 잔잔히 막을 내린다.


▌5. 사실과 허구
쿠아론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영화 속 장면의 90%가 내 실제 기억에서 나왔다"고 밝혔을 만큼 사실에 기반한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1) 감독의 실제 실화인 부분
①아버지의 가출과 부모님의 이혼
실제로 감독이 10대이던 1970년대 초반,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영화에서처럼 학회를 핑계로 집을 떠난 후 다른 여성과 바람이 나 가족을 영원히 버렸다. 감독은 당시 아버지가 떠나면서 남겨진 가족들이 겪었던 외로움, 불안, 그리고 그로 인한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를 영화에 고스란히 투영했다고 밝혔다.


② 보모 '클레오'의 존재
주인공 클레오는 실존 인물이다. 감독이 갓난아기일 때부터 그를 친자식처럼 업어 키운 원주민 보모 '리보리아 로드리게스(줄여서 리보)'가 그 모델이다. 감독은 리보와 나눈 수많은 대화를 바탕으로 그녀가 겪은 고충을 시나리오로 옮겼다.

③ 해변에서 아이들을 구한 사건
실제 멕시코 해변에서 수영을 못하던 보모 리보가 거센 파도에 휩쓸려 죽을 뻔한 쿠아론 감독과 형제들을 목숨 걸고 구해냈던 극적인 사건 역시 실화다.

④ 시대적 배경과 공간
영화의 배경인 멕시코시티의 '콜로니아 로마' 지역은 감독이 자란 실제 동네다. 1971년에 터진 '코르푸스 크리스티 학살 사건' 또한 감독이 청소년 시절 실제로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던 역사적 사실이다.

(2) 허구 (영화적 각색이 들어간 부분)
클레오의 임신과 사산 과정 (일부 각색)
실제 모델인 보모 '리보' 역시 청년과 연애를 하다가 임신을 하고 버림받은 미혼모의 아픔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영화 속에서처럼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숨을 거두는 극적인 '사산' 과정이나, 남자친구가 가구점에 총을 들고 난입해 대치하는 등의 디테일한 연출은 영화적 긴장감과 상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독이 실제 리보의 사연에 극적인 각색을 덧붙인 부분이다.


▌6. 영화 관련 정보
(1) 제목 '로마(ROMA)'의 진짜 의미:
이 영화의 제목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가 아니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란 멕시코시티 내의 실제 행정구역 명칭인 '콜로니아 로마(Colonia Roma)'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ROMA'라는 철자를 거꾸로 뒤집으면 스페인어로 사랑을 뜻하는 'AMOR'가 된다.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계급과 인종을 초월해 서로를 지탱해 주었던 여성들의 숭고한 사랑을 내포한 아름다운 아나그램(anagram: 언어유희(말장난))이기도 하다.

(2) 65mm 대형 카메라로 담아낸 흑백 미장센:
쿠아론 감독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려고 흑백 화면을 채택했지만, 의도적으로, 필름의 결(grain)이 보이는 아날로그 방식 대신 초고화질 디지털 65mm 카메라를 사용했다. 덕분에 관객은 오래된 과거의 추억을 구경하는 느낌을 넘어, 현실보다 더 선명하고 입체감이 있는 1970년대의 한가운데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듯한 시각적 체험을 하게 된다.

(3) 코르푸스 크리스티 학살 사건 
1971년 6월 10일, 가톨릭 축일인 코르푸스 크리스티(성체하혈축일)' 당일, 멕시코시티의 대학생들은 대학의 자치권 보장, 정치범 석방, 교육 예산 증액 등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와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당시 멕시코 정부는 군대나 경찰을 직접 투입해 시위를 진압하면 국제적인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했다. 대신 이들은 '로스 알코네스(매라는 뜻)'라고 불리는 비밀 준군사조직을 동원했다. 이 조직은 주로 가난한 슬럼가 출신의 청년들이나 군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정부의 지원을 받아 무술과 군사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영화 속에서 클레오를 버린 남자친구 '페르민'이 바로 이 조직의 조직원이다.


시위가 시작되자, 곤봉, 칼, 총으로 무장한 '로스 알코네스' 대원들이 시위대를 덮쳤다. 이들은 대학생들을 무차별 구타하고 총격을 가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실려 간 학생들을 쫓아가 병원 응급실과 수술실까지 난입해 환자들을 사살하거나 납치했다는 점이다. 이 날의 폭력으로 최소 120명 이상(정확한 수치는 여전히 은폐됨)의 젊은 대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자신이 10대 시절 실제로 목격했던 이 끔찍한 학살의 기억을 영화 속에 그대로 재현했다. 영화 속에서 아기용품을 사러 가구점에 갔던 클레오는 창밖으로 대학생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 참혹한 학살 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가게 안으로 총을 들고 들이닥친 '로스 알코네스'의 무리 중에서 자신을 버린 페르민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 역사적 사건은 영화 속에서 두 가지 상징성이 있다. 
① 폭력의 대물림: 가난한 원주민 청년인 페르민이 국가 권력의 도구가 되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약자들을 짓밟는 구조적 비극을 보여준다.
② 개인과 시대의 슬픔: 멕시코라는 국가가 피로 물드는 국가적 비극(학살)의 순간에, 주인공 클레오 역시 양수가 터져 아기를 잃게 되는 개인적 비극(사산)을 동시에 맞이하며 영화의 슬픔을 극대화한다.